M26 Heavy Tank"Pers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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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설명
M26 파ーシング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등장한 90mm 포를 장착한 미국의 45톤급 중전차입니다.
45톤의 무게에 해당하는 것은 소련의 IS2 중전차, 독일의 판터 중전차입니다.
화력과 방호력 모두 M4 셔먼보다 크게 향상되어 타이거 I 및 판터를 일소할 수 있는 전력을 확보했으나,
M4 셔먼과 거의 동일한 엔진을 사용했기 때문에 M4 대비 15톤의 무게 증가를 견디지 못하고,
기동력이 크게 저하되었습니다.
(물론 ‘기동력 저하’로 끝나는 건 역시 미국제네요. 독일이라면 이런 식으로 끝나지 않았을 텐데요.)
전쟁 종료 후 1950년부터 시작된 한국전쟁에도 투입되었고, 화력에서는 북한 및 중국군의 T34/85를 압도했으나,
경사지와 진흙투성이의 한국 지형에 어려움을 겪었고, 엔진을 강화한 M46 파트론에 의해
주력 전차의 지위를 빼앗겼습니다.
M26의 개발 및 배치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촬영할 만큼 생각하게 만드는 내용입니다.
신형 전차 개발은 비교적 빠른 1942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몇 차례의 시제품을 거쳐,
1944년 노르망디 상륙 시점에는 배치 가능한 단계까지 진전되었지만,
그때 갑자기 방해물을 내민 것이 AGF(육군지상군)였습니다.
미국 본토에서의 수송 효율을 중시한 AGF는
“독일의 중전차는 M4의 신형 76mm 포로도 파괴 가능하다”며, 이로 인해 신형 전차 개발이 중단되었습니다.
소련에서 “강력한 신형 판터 전차가 등장했다”는 정보가 들어왔지만, 그들은 경시되고 묵살되었습니다.
북아프리카에서 영국군에 제공된 M4의 전과에 안도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실제 전투 경험의 부족으로 인한 ‘감’의 결여 때문일까요.
그 ‘대가’는 연합군 전차 승무원들의 피와 육체, 생명으로 지불되었습니다.
단 한 대의 강력한 독일 전차의 화력만으로도 여러 대의 연합군 전차가 순식간에 불타고, 수많은 생명이 사라졌습니다.
그것이 노르망디 이후 연합군 전차 승무원들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무기의 성능 차이로 인해 자기 나라의 젊은이들이 죽어간다.”
이러한 현실을 당시 미디어가 침묵할 리 없었습니다. 육군 고위층에 대한 격렬한 비난이 일어났고,
육군 내부의 강력한 압력과 더불어 발지 전투에서 타이거 전차와 판터 전차의 위협이 결정적 타격이 되어,
육군 고위층도 마침내 무거운 몸을 일으켜, 정지된 신형 전차의 배치 및 제식 채택을 결정했습니다.
그때는 이미 1945년 1월이었습니다. 독일의 마지막 대반공 작전은 이미 끝난 후였죠.
코른 대성당 아래에서 판터와 벌어진 전차전, 영화 ‘레마겐 다리’로 유명한 레마겐 전투에서도 잘 알려진 전차입니다.



















